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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목길오감도-동명/산수/계림동

푸른길과 뽀짝 동네꼴목길오감도-동명/산수/계림동

광주 도심부의 많은 주거지역은 해방 이후 전라남도 여러 농촌지역으로부터의 인구유입에 의해 급격한 도시 확장으로 형성된 주택지들입니다. 특히 과거 철도가 도심부를 통과하던 경전선 주변들로서, 기차가 다니던 때는 소음과 진동, 먼지 등의 피해는 물론 협소한 건널목에서 각종 인명, 차량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던, 말하자면 기찻길옆 동네랍니다.

철길보다 지붕이 낮아 방에 달린 좁은 창문 밖으로 기차바퀴가 보이는 집들도 있었고, 철길과 나란한 석축 위가 집의 베란다가 되어 거기에 내어놓은 의자는 기차바람 한번 시원하게 쐴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했지요. 물론 쇄석이 깔린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텃밭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철길 옆 원풍경들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오랜 바램이 이루어져 그 철길은 2000년 마침내 폐선되고, 시민단체와 힘을 합쳐 도로나 경전철부지로 바뀔 것을 막아내 희망의 푸른길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답니다. 2003년부터 푸른길공원 조성은 시작되었지만 이 지역은 전체 구간에서도 가장 늦게 이루어져, 2010년 초에야 공사가 끝났답니다. 철도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고 푸른길이 성립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늦게까지 기다려준 것이지요.

수년간 푸른길 주변의 동네를 기웃거리며 보아온 골목길의 풍경들은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도시의 오래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들은 언제까지나 찾아가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랍니다. 그 사이에도 풍경과 사람들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던 것이지요. 가장 안타까운 변화는 이 지역의 많은 부분이 이미 주택재개발이나 주거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는 주택들이 늘어나면서 차분하고 안정된 주택지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이지 않는 미래가, 휘어져 돌아가는 좁은 그 골목길 안쪽에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 동네에 살지 않는 이방인의 눈에는 광주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는 신기하다는 반응, 혹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감에 대한 거부감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도시의 또 다른 모습, 한때는 일상 풍경이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보다 정겨운 느낌으로, 보이지 않던 부분까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끔 골목길 위로 튀어나온 좁은 처마들을 올려다보며 그 사이로 이어지는 파란 하늘로 눈을 옮겨보세요. 걷다보면 어느새 골목길은 푸른길로 이어지고 옛날 건널목과 만나게 될 겁니다.

전라남도청 부지에 들어서는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걸어서 5~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동네. 구불구불 이어지는 그 안의 골목길들은 푸른길에 이르는 접근로이자 또 다른 문화산책로, 도시순례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문의 표정, 골목길 정원, 그 골목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일상의 모습들을 이어 이야기가 있는 투어코스로 제안합니다.

좁게 이어질 것만 같은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고, 갑작스러운 골목길의 변화에 저절로 가벼운 탄성이 나온다. 길 한 켠으로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텃밭이 저쪽에서 다시 길이 꺽이며 그 뒤로도 배경이 이어져 발걸음을 끌어들인다. 상추며 고추가 한창인 여름 텃밭, 지난 봄에는 노란 배추꽃에, 길가 평상 위엔 고양이가 졸고 있었을 법한, 한가하고 나른한 골목길 일상

- ‘푸른길과 옛 기찻길 동네(글과 그림 조동범)’ 중에서
ⓒ 조동범

높은 담과 골목길 축대위로 담이 있고 그 담위로 옥상의 장독대와 차양, 하늘이 이어진다. 회색의 시멘트 벽만의 순수한 좁은 골목이기에 그 하늘의 표정을 그대로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콘트라스트가 만들어내는 묘한 분위기의 골목길이 동구 계림동과 산수동을 가른다.

‘푸른길과 옛 기찻길 동네’ 중에서
ⓒ 조동범